영국 공영방송, 유튜브에 “더 많은 노출해 줘”

공영방송, 유튜브와 ‘법적 협업’ 논의까지, 어린이 · 뉴스 콘텐츠 우선 노출 법제화 요구
영국의 통신규제기관 Ofcom은 공영방송(PSB)이 더는 기존 방송 플랫폼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유튜브와의 협업을 ‘긴급히(Urgently)’ 추진해야 한다고 공식 촉구했다. 특히 뉴스와 아동 콘텐츠는 정부 차원의 입법 지원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전통 미디어의 위기와 디지털 전환 압박

Ofcom이 발표한 Public Service Media Review 보고서에 따르면, BBC, ITV, STV, Channel 4, Channel 5 등 영국의 주요 공영방송들은 현재 심각한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같은 초개인화된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청자와 광고주의 관심을 독점하면서, PSB는 고품질 콘텐츠 제작 및 유통에 필요한 재원을 점점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콘텐츠를 지상파 송출망뿐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며, 기존 시스템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Ofcom의 판단이다.


유튜브에서 레거시 미디어 콘텐츠를 더 많이 보이게 해달라

Ofcom은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PSB 콘텐츠가 유튜브 내에서 더 큰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입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Media Act와 같은 기존 법률처럼 플랫폼 내 PSB 콘텐츠에 법적 ‘우선노출권(prominence)’을 부여하자는 발상이다.

보고서는 특히 다음 영역에 대해 입법 추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아동 콘텐츠: 유튜브에서의 아동 시청률 급증
  • 뉴스 콘텐츠: 공정성과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채널의 노출 확보

이러한 법제화는 단기간 내에는 복잡한 준비를 요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영방송 콘텐츠가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알고리즘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보장하는 효과가 있다.


시청 데이터 :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미 유튜브 중심

보고서는 연령대별 미디어 소비 경향도 상세히 다루며 유튜브의 영향력이 압도적임을 수치로 보여준다.

  • 4~6세 아동: 유튜브 시청 비율 27%, 모든 PSB 서비스 합산 21%
  • 7~12세: 유튜브 비중 35%
  • 13~15세: 유튜브 및 틱톡 합산 49%

즉, 아이들이 TV 대신 유튜브를 기본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자라나는 세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Ofcom은 이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공영방송 콘텐츠는 다음 세대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전체 영국 시청률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BBC가 19%, ITV/STV 10%, Channel 4가 6%를 차지하고 있어, 전통 방송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튜브(14%)와 넷플릭스(8%)가 빠르게 성장 중이며,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유율이 역전되고 있다.


생성형 AI와의 경쟁까지 등장

보고서는 생성형 AI(GenAI)의 등장이 콘텐츠 생산·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제작비와 시간의 장벽이 콘텐츠 품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AI가 빠르고 값싸게 영상·이미지를 생성하며 ‘콘텐츠 홍수’를 유발하고 있다.

PSB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정확하고 공정한 콘텐츠를 지속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으나, 투자 여력 부족과 플랫폼 경쟁력 하락으로 그 역할조차 위협받는 상황이다.


플랫폼 독점력에 대한 제도적 공존 시도

이번 발표는 단순한 ‘협업 권고’를 넘어, 유튜브와의 관계를 제도적으로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법적 우선노출권’이라는 단어는 플랫폼의 추천 시스템 안에 공적 콘텐츠를 강제로 끼워넣겠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이는 유튜브의 알고리즘 독립성과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반대로 해석하면, 영국 정부 및 미디어 규제기관이 더는 유튜브를 외면하거나 적대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공식 인정이기도 하다. 전통 미디어가 유튜브에 “무릎을 꿇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레거시 미디어의 종속적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튜브나우의 마무리
공존을 위한 항복, 그리고 숙제

Ofcom의 보고서는 방송사들의 변화를 촉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플랫폼 시대의 생존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수립하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BBC, ITV 등 전통의 PSB들이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콘텐츠를 올리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으며, 법적 기반까지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그 긴박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전통 미디어의 콘텐츠가 다시 주목받는 기회일 수도 있다. 알고리즘 안에서 묻혀 있던 공공성 기반 콘텐츠가 법적 보호를 통해 시청자와 재연결된다면, 이는 크리에이터와 플랫폼에게도 새로운 상호작용 모델이 될 수 있다.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두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1. 공공 콘텐츠의 추천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으며, 이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정부나 기관의 PSB 콘텐츠 제작에 외부 협업 기회가 생길 수 있어, 크리에이터가 새로운 형태의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영국의 이 움직임은 다른 국가의 미디어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선택하는 시대에서, 이제는 플랫폼에게 콘텐츠를 강제로 노출하라고 요구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참고자료(보고서) : https://www.ofcom.org.uk/siteassets/resources/documents/public-service-broadcasting/public-service-media-review/transmission-critical-the-future-of-public-service-media.pdf?v=40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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